우리나라 1세대 야구인으로 불리는 야신 김성근 감독입니다. 1942년 12월 13일 일본 교토 출신이라 일본인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한국인입니다.
유년기를 일본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교토시립 시조중학교를 졸업하고 교토부립 가쓰라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일본생활 중 조선인으로서 차별받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야구를 열심히 했다는 소개글이 있지만, 김성근과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꼭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초등학교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싸움을 잘해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 밝힌 적이 있으며, 결코 조선인이란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는 자는 없었다 말했습니다.
하루는 동급생들을 주도해 단체로 수업시간에 도망을 치는 사건으로 여선생을 울린 일화도 소개하는 등 학창 시절 이른바 '일진' 임을 자랑하였습니다.
KBO리그 OB베어스, 태영 양, 삼성, 쌍방울, LG, SK, 한화 이글스를 거친 명장으로 유명합니다.
국내분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 치바롯데, 소프트뱅크 코치를 역임한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정 반대의 평가도 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야구 감독 코치로 정상에 굴림하며 많은 업적을 남기고 2022년 10우러 16일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국내 팬들에게는 2000년대 후분 SK와이번스의 감독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하며 야구의 신 '야신'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팬덤층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은퇴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아 성적부진과 과거의 행적들로 나쁜 이미지로 다시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감독시절 "투수는 던질수록 강해진다"라는 자기 합리화적 야구철학으로 많은 투수들이 혹사 논란이 있었습니다.
또한 비매너 플레이, 곰수, 심리적 도발등을 경기 중 동원하는 등 비열한 야구를 한다는 평가와 팀을 쥐어짜서 거덜 내는 운영 스타일이라는 평가입니다.
반면 자신만의 독특한 투수운영 스타일과 단기전 승무사 기질을 가진 명감독으로 평가받기도 하며, 수많은 기업과 대학을 비롯해 하물며 청와대에서 초청받아 리더십과 성공론을 강연을 한 인물입니다.
김성근 감독의 자서전을 보면 야그를 배우던 시기는 열악하여, 장비는 커녕 야구를 할 수 있는 야구장 마저 없었다 밝혔습니다.
"훈련이라고는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라 밝혔습니다. 포지션별 선수조차 갖추지 못해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는 다른 운동부 선수로 채웠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우익수였던 김성근은 고3의 졸업으로 투수공백이 있자 투수로 전향했습니다. 당시 감독이 부족한 투수진으로 인해 김성근에게 나가서 한번 던져보라는 말에 투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본인이 생각해도 '제대로 된' 투수가 아이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김성근의 한국으로 올 수 있던 건 계기는 재일동포 야구단에 포함되며 한국에 처음 방문 하게 되었습니다.
김성근 고3이던 시절 1959년 김성근 어머니 이계수 여사는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지원을 했고 김성근 가족은 곧 북한으로 이주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에 북한의 홍보는 "만민이 평등하며 모두가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디"라고 선전을 했으니 남한 보다는 북한으로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왔다간 김성근 감독은 한국에서 야구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확신으로 어머니를 설득하였습니다.
"듣던 것과 다릅니다. 한국이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라며 어머니를 설득하고 한국은 발전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북한에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없다는 점이 김선근이 한국으로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김성근은 프로구단 2군 입단 테스트를 보았지만 번번이 탈락을 하며, 2군 선수들과의 실력차이를 절감했고, 사회인 야구단에서 조차 김성근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김성근의 말에 의하면 충분히 실력은 있었지만, 재일교포 차별로 탈락을 했다 밝혔지만, 실상은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계와 연예계는 재일교포 관계없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무대였다 알려져 있습니다.
그 예로 재일교포 야구인 장훈과 김일융을 들 수 있습니다. 둘은 실력으로 협회 규정과 고등학교 학칙규율가지 변경되며 일본 프로무대에 입단을 하였습니다.
김성근의 일본 선수생활은 상호차량팀으로 동네 야구팀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김성근은 아주 뛰어난 야구 실력은 아니었다는 것이 사실인 듯 보이며, 차별이 아니라 야구를 못해서 좋은 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김성근은 상호차량에서 몇 개월 생활 후 한국으로 다시 건너와 교통부 실업팀으로 입단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야구를 배웠지만, 프로급으로 배웠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고교선수 시절주말마다 시합을 했지만, 캐치볼 훈련을 아무것도 아닌 훈련으로 치부해 버리는 김성근의 언행에 많은 야구인들이 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평가하였습니다.
말투와 억양에 녹아있는 일본식 발음에 비판적이 시각이 있습니다. 한국에 수십 년 거주 중임에도 일본식 발음을 고수하는 느낌입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서 공과 과가 갈리며 사람마다 다른 평가를 내리는 인물로, 그 누구보다 명암이 뚜렷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스포츠 예능 '최강야구' 이승엽감독 후임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활약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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